글. 이남제(코아프 대표/ 가평군재가불자연합회 회장/ 동국대 비교법문화연구원 전문연구원 법학박사)
지난 일요일, 박범서 선거캠프 사무실이 조용히 정리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목소리, 그리고 희망이 머물렀던 공간은 어느새 고요해졌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전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헌신이었던 그 시간들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사무실 정리를 마친 뒤, 캠프에 함께했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 소박한 뒷풀이를 가졌다.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쉽게 털어내기 어려운 아쉬움을 나누는 자리였다.
술잔이 몇 순배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가장 연장자이신 민 회장님께서 조용히 입을 여셨다.
“매우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생하신 후보님, 그리고 뒤에서 봉사해 주신 모든 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한마디에는 긴 시간 함께해 온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다.
이어진 말씀 속에서, 그날의 한 장면이 더욱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공천 확정이 발표되던 날, 캠프에 함께 계셨던 민 회장님은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낙마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박범서 후보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던 부인을 꼭 안아 주며 조용히 다독였다. 그 짧은 순간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 책임감, 그리고 미안함까지.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먼저 위로하는 선택을 했다. 말보다 깊은 위로였고,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진심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선거란 본질적으로 결과가 갈리는 과정이다. 승리한 사람에게는 환호와 축하가 따르지만, 패배한 사람에게는 감내해야 할 무게가 남는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결과 이후의 태도다. 패배의 순간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지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그날 박범서 후보는 자신의 감정보다 함께한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다.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배우자를 위로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말에 그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이후, 그는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도,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예의나 형식적인 행동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것은 평소의 삶에서 비롯된 태도이며,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실천해 온 사람만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품격이다.
자신을 다스리고, 가족을 먼저 돌보며, 함께한 이들을 끝까지 잊지 않는 자세. 그 조용하지만 단단한 태도 속에서 우리는 한 정치인의 인간적인 깊이를 마주하게 된다.
정치인의 품격은 연단 위의 연설이나 화려한 성과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그가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패배 이후의 처신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앞으로 어떤 리더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박범서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패배를 변명으로 덮지 않았고, 침묵으로 외면하지도 않았다. 대신 사람을 향한 태도로, 관계를 지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진심을 표현했다.
패배는 끝이 아니다. 때로는 그 사람의 본질을 가장 또렷하게 비추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순간, 박범서 후보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신의 품격을 증명해 보였다.
화려한 승리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은, 바로 이런 품격 있는 패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잔잔잔한 울림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