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6-24 15:42

  • 특별기고 > 칼럼

[기고] 하와이에서 느낀 조화와 균형의 美

기사입력 2026-05-13 12:56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 양태룡(인문고전연구소 경인학당 대표)

하와이 12일간의 호놀룰루 여정은 사위의 승진을 축하하고 가족의 안녕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나, 어느 순간 관광을 넘어 내 삶의 궤적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하와이는 나에게 태평양의 쉼표이면서 동시에 문명의 역설을 보여주는 푸른 스승이었다.

와이키키 해변의 아침은 눈부시게 투명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관용의 정신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이곳은 이제 세계인의 낙원이 되었지만, 그 찬란한 빛 아래 쉼터를 차지한 노숙인들의 모습은 지독한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그들이 내건 “Hungry, Thirsty, Aloha Ke Akua(나의 영혼은 갈급하나 신의 사랑 안에서 안식을 찾는다)”라는 문구는 번영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인간 본연의 결핍을 아프게 상기시켰다.

공원 중심에 서서 하늘로 뻗어야 할 줄기를 다시 땅으로 내려보내 스스로 뿌리가 된 반얀트리(Banyan Tree)를 본다. 유종원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에 나오는 가르침처럼, 이 나무는 인간의 인위적인 가위질에 길들지 않았다. 인간의 눈으로는 거꾸로 자라는 비정상일지 모르나, 나무는 본성에 충실했기에 거대한 생명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그 고유한 결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자연이 가르쳐준 무위(無爲)의 지혜였다.

마노아 밸리로 향하는 길,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연안의 얕은 물이 아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검푸른 심연(深淵). 그 깊은 맛은 인간의 언어를 삼킬 듯 고요하고 웅장했다. 대학교 야시장에서 맛본 아사이 볼(Acai Bowl)의 자연스러운 달콤함은 문명에 지친 미각을 깨우는 자연의 숨결이었다. “내 의지대로 과일을 선택해 담으라는 문구처럼, 삶의 주체성을 새삼 확인하며 나는 나만의 맛을 담아냈다.

Dole Plantation에서 트램을 타고 바나나와 온갖 과실이 영글어가는 현장을 바라보며, 나는 밝은색의 알로하 모자 하나를 구입했다. 나이 들어감에 굳이 삶의 색깔을 무겁게 유지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그러나 노스쇼어 해변에서 들려온 사위 차의 브레이크 파열 소식은 삶의 평형을 순식간에 흔들었다. 알라 와이(Ala Wai) 다리를 수시로 건너며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사실은 삶과 죽음, 일상과 비일상이 위태롭게 교차하던 경계였음을 깨달았다. ‘안전이라는 유리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섬바람의 서늘한 경고를 통해 절감한 순간이었다.

쿠알로아 랜치(Kualoa Ranch)의 쥬라기 계곡에서는 짚라인을 체험했다. 예전 유격훈련을 받던 기분이 되살아났으나, 긴장감 대신 웃음과 농담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자유로운 자세로 활강하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함께한 일본인 친구는 서툰 자세에도 용기 있는 말로 분위기를 돋웠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소떼와 그 등 위의 파리떼, 그리고 그들과 조를 이루어 움직이는 흰 새 한 마리의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평화로운 공생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이올라니 궁전(ʻIolani Palace)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는 권력의 덧없음을 읽었다. 한때 왕이 군림하던 공간을 이제는 노숙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궁전 안에 있으면 왕이고 밖에 있으면 거지인가. 인간의 존엄은 결국 화려한 외벽(外壁)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에 있음을 보았다. 건너편 음악당의 ‘Diversity’ 표지판은 이 섬이 품은 수많은 인연을 웅변하고 있었고, 특히 인천하와이 공원은 낯선 땅의 소금바람 속에서 눈물로 생을 일구어낸 선조들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역사는 거대한 영웅의 기록이 아니라, 이름 없는 이들이 견뎌낸 시간 위에서 비로소 흐르는 것이었다.

폴리네시아 민속촌에서 마주한 하카(Haka) 춤의 거친 함성과 전통 뱃놀이는 문명의 껍질 아래 잠들어 있던 원초적 생명력을 깨웠다. 그 생동감 곁에서 만난 나우파카(Naupaka) 꽃은 애달픈 전설을 품고 있었다. 산과 바다로 나뉘어 각각 반쪽만 피어난 꽃잎처럼, 우리네 인생 역시 사랑도 건강도 늘 반쪽짜리 결핍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삶이란 결핍을 지워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기댄 채 공존(共存)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 것이다.

저녁 만찬에서 만난 음식들은 또 다른 배움이었다. 요란한 퍼포먼스의 멧돼지 바비큐나 거대한 위용의 코나 캄파치(Kona Kampachi)보다, 소박한 자색 고구마인 우알라(Uala)와 조림 감자를 닮은 롱간(Longan)의 맛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화려한 겉모습보다 내실 있는 본질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을 입으로 확인했다.

사돈과 함께 대형마트를 돌며 생활용품을 고르고, 소박한 기념품을 찾던 시간들 또한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숙소에서 즐긴 게임의 웃음과 흘러나오던 팝송 “Don’t Take It Away”의 익숙한 선율은 서로의 거리를 자연스레 좁혀 주었다. 거창한 담론보다 일상의 소소한 놀이와 평범한 행위 속에서 가족과 인연의 온기가 더욱 깊어졌음을 느꼈다. 중용의 삶이란 결국 비범한 깨달음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일상의 평온함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함께 누리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다이아몬드 헤드 아래에서 젊음의 열기를 마주하며 문득 육체의 유한함을 느꼈다. 크루즈 선상 파티의 화려한 여흥 속에서도 와인 1/2 잔조차 버거웠던 컨디션은, 인생이 이제 축제보다는 고독한 성찰의 시간으로 기울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 쇠락은 비극이 아니다. 더 많이 내려놓고 더 깊이 바라보게 되는 인생의 축복이다. 어미 닭을 따라가는 병아리들처럼, 생명은 그저 흐르고 이어지는 것임을 조용히 긍정해 본다.

진주만(Pearl Harbor)의 상흔은 제국주의의 탐욕이 남긴 냉혹한 역사의 증거였다. 전쟁과 평화,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이 섬은 나에게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세상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우리네 인생은 날로 늙어간다.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하와이의 푸른 파도는 내게 바로 그 중용의 가치를 일러주었다. 반얀트리처럼 타인의 다름을 재단하지 않고, 나우파카처럼 자신의 결핍을 품어 안으며, 전쟁 같은 현실 속에서도 마음속 평화의 섬을 지켜내는 일이다. 12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안의 심연이 조금 더 깊어졌음을 느낀다. 하와이는 내게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극단에 쏠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는 법을 가르쳐준 푸른 바다였다.

 

관리자 (gptimes@naver.com)

댓글0

스팸방지코드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