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가평군 관광전문위원 이상용(관광경영학 박사)
가평군은 서울에서 가깝고 산림과 수변 등 자연생태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레저 중심 체험관광이 활성화되어 있다. 특히, 江과 山을 배경으로 인간 본연의 자아 성취를 추구하는 관광 소비자들에게 풍부한 인문적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관광 동기를 유발하는 심리적 관광 전략사업에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자라섬 꽃페스타는 경기도 3년 연속 대표 축제로 성장했으며, 최근 경기도 지방정원 등록 후 국가정원으로 성장할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관람객 10만 명 이상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수도권 최고의 아웃도어 축제장으로, 해마다 봄‧가을 꽃축제 행사를 개최하여 관광객을 대량 유인함으로써 생활 인구를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라섬 ‘관광 유인(Pull) 전략’은 정부 관광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간접 관광 유인 정책’을 기반으로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여행 시 여행경비의 50%를 환급해 주는 ‘지역사랑 휴가 지원사업’과 지정 명소 방문 시 할인을 제공하는,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 등 다양한 관광 유인 정책을 관광전략의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가평군은 이와 같은 정부 정책에 따라 자라섬 꽃페스타 입장권 판매 시 지역화폐 환급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직접적 관광 유인 전략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자라섬 꽃페스타 ‘관광 유인(Pull) 전략’의 3대 성공 요인으로는, 매력 있는 축제자원 발굴, 언론의 대대적인 협조, 특성화 농축산물 판매 등 관광객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통하여 관광 소비자가 스스로 관광 목적지인 자라섬으로 찾아오게 함으로써 관광산업 성과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이렇게 자라섬 꽃페스타에 관광객을 유인한 다음, 주변의 관광지점과 관광 편의시설과 연계하여 체류형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 2단계 전략사업을 추진한다. 궁극적으로, 가평군 체류형 관광산업이 활성화하고, 그로 인하여 생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인구 소멸 대응을 위한 정책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자라섬 관광 유인 전략과 연계할 수 있는 주요 관광거점으로는, 보납산(寶納山)과 초연대(超然臺), 북한강 청평호와 청평댐, 설악의 울업산과 신선봉, 청평의 호명산과 호명호수 등 자연생태 관광지들이 있다. 이들과 더불어 문화‧예술‧음악‧전시 영상 등 문화자원을 주제로 하는 공공문화시설, 민간 테마파크, 관광편의, 숙박시설들이 주변에 산재하고 있다.
전술(前述)한 주요 생태관광지들은 저마다 민간설화(說話)를 기반으로 재미있고,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생태관광지마다 관광 유인 요소를 가미한 인문적 관광상품을 생산한다면, 자라섬과 함께 관광객 유인 전략을 성공시킬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본다.
먼저, 보납산은 지역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보유한 가평의 진산(鎭山)이다. 가평읍 읍내리에 자리한 야트막한(329.5미터) 바위산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예가 한호라는 분이 초대 가평군수로 재직하면서 자주 그 산에 올랐다. 군수는 그 바위산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신의 호마저 석봉(石峯)이라고 지었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벼루와 붓을 그 바위산에 묻어두었다. 훗날 사람들은 그가 묻어둔 벼루와 붓을 보물로 여기고 보납산(寶納山: 보물이 묻혀 있는 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오늘날 가평군 곳곳에 있는 한석봉 체육관, 한석봉 도서관, 한석봉 어린이집 등 공공건축물은 대부분 그 군수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으며, 가평문화원에서는 해마다 그를 기리는 전국휘호대회를 열고 있다.
보납산 일대는 구한말(舊韓末) 의병군의 최후 격전장이었다. 나라 잃은 분노에 떨쳐 일어난 가평•춘천 의병연합군이 서울로 진격 중 정부군과 맞서 결전하다가 산화한 역사적 현장이다.
명성황후 시해, 단발령 공포 후 전국에서 의병들이 봉기했다. 가평에서 연합의병대가 세력을 구축하자 정부에서 토벌대를 급파했다. 보납산 입구에 진을 친 의병군은 관군을 맞이하여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으나, 무기와 훈련 부족 때문에 패하고 말았다. 여기서 살아남은 의병들은 북면 일대로 피신했다. 그들은 나중에 멱골을 중심으로 일어난 3.15 가평 독립 만세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암릉인 보납산은 원래 늪산과 붙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舊 경춘도로를 개설 공사를 할 때 분리되었으며, 최근 동물 생태통로를 복원하면서 다시 하나로 이어지게 되었다. 늪산과 초연대도 역시 붙어 있었는데, 새로 건설한 新 경춘국도 때문에 자라의 목이 잘린 듯 분리되어 있다.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이 찾아오고, 다산 정약용이 최고의 경치로 꼽던 초연대, 그 절벽 밑으로는 가평과 춘천 행정구역 경계를 가르는 북한강(北漢江)이 굽이쳐 흐르고 있다. 보납산과 늪산, 초연대로 이어지는 3개의 지점을 이어보면 마치 자라가 웅크리고 앉아 북한강물을 마시는 모습을 하고 있다. 자라섬이라는 이름은 이런 모습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계절 따라 찬란한 꽃들이 순서대로 만개하고, 봄과 가을에 꽃페스타가 펼쳐지는 자라섬 남도 끄트머리, 북한강 천년 뱃길은 맑은 햇살에 부딪히는 에메랄드빛 잔물결이 여인의 섬섬옥수처럼 부드럽게 일렁이고 있다.
가평은 오랫동안 춘천에서 한양까지 세곡과 목재, 축산물을 운반하던 수상교통로의 핵심 경유지였다. 춘천과 가평의 첨단을 잇는 경강대교 옆 안반지에서 시작하여 복장포구와 양진나루를 거쳐 대승나루까지 대략 100리 물길을 아우르는 청평호는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청정 수상레저산업 생태계가 융성하는 산업기반이 되었다.
고전 연구자들은 다산 정약용이 1820년 북한강 줄기를 따라 춘천을 여행하며 쓴 ‘천우기행(穿牛紀行)’을 고전 인문학의 으뜸으로 친다. 다산은 북한강 굽이굽이마다 강변의 산수와 경치, 인물, 일상을 배경으로 하여 칠언절구, 25수의 시를 사용하여 아름답게 그려냈다. 북한강 곳곳의 여울목과 강줄기, 산세, 기후변화 등 다양한 지리 및 자연환경을 탐사하면서 즐거움과 함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행 일기를 썼다. 다산은 청평호 하단에 있는, ‘황공탄’ 사나운 물길을 보면서 ‘청평마을, 청산이 홀연 배 한 척을 토해 내누나‘라는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천우기행에 기록했다. 1823년에 두 번째로, ‘물 위를 떠다니며 살림하는 배’를 강물에 띄우고 쓴 ‘산행일기(汕行日記)’에는 청평호 인근 호명산 자락의 ‘호후탄’에서 1박을 하며, ‘주인집 노파가 낮에 화전에 불을 놓다 발을 다쳐 밤새 앓았는데,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라고 적었다. 2일째는 가평 경강교 부근의 ‘안반지’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깨끗하고 정갈한 여행이었다.’라는 고전 인문학 사료(史料)를 후세에 남겼다.
가평 자라목에서 대성리에 이르는 북한강 곳곳에 나루터 흔적이 남아있어 명징했던 수상교통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름도 아름다운 가평 안반지나루, 청평 금대나루, 복장포구, 양진나루, 송산리 물미나루, 선촌리 자잠나루, 사룡리 어리실, 대성리 대승나루는 오랜 세월 북한강 수상교통의 역사 속에서 뱃사공들이 힘들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휴게 공간이었다.
특히, 선촌리 자잠나루는 오랫동안 수상교통의 거점으로 발달했다. 한때 어리실과 함께 대규모 나루터를 이루며 화물 배와 축산 배로 북적였다. 어리실의 강 만곡부(彎曲部) 주변은 가평 일대의 세곡과 목재, 소·돼지 등 가축을 운반하는 선박의 교통거점으로서 한 때 파시(波市)를 이룰 정도로 융성하기도 했다. 일제는 대륙을 침공하기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킨 후 인천에 군수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인천에서 가까운 북한강 유역 청평에다가 수력발전용 댐을 건설하기로 했다.
일제 기술자들이 현장답사를 한 결과 물줄기가 세고 폭이 좁은 청평 ‘전여울’에 중력식 댐을 설계했다. 조종천과 북한강이 합수하여, 물살이 꽤 세고 급하게 떨어지는 곳이었다. 강바닥은 암반이라 지질학적으로 공사에 유리하고, 폭이 좁아 투자비에 비해서 제법 경제성이 있었다. 일제는 가평지역에서 근로자를 징발했고, 나중에는 아녀자와 청소년까지 동원했다. 청평댐이 준공되기까지 수백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오늘날 청평 수력원자력발전소 안에 있는 공난자 희생비에는 고작 44명의 사망자 명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 청평댐과 수력발전소가 완공되고 나서, 천 년 넘게 서울과 춘천을 이어오던 북한강 수상교통로의 명맥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북한강 뱃길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역설적으로 자연과 낭만이 꿈틀대는 북한강 수상레저 문화가 태어났다. 드넓은 청평호에는 유람선과 수상레저가 날로 융성해 왔다. 가평군은 일찍이 청평호를 가평 제1경으로 꼽았다. 비록 북한강을 통하여 서울로 가는 뱃길은 끊어졌지만, 새로 태어난 청평호에는 오늘날 천년 뱃길, 수상레저 문화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한편, 청평호 수변에 붙어 있는 울업산(蔚業山)은 천 년 동안 신비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산은 원래 백두산 근처에서 살고 있었는데, 조선국 도읍지 주산(主山)이 되고 싶어 찾아왔다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았다는 전설 속의 名山이다.
설화(說話)에 의하면, 조선 개국을 앞두고 무학대사가 새 도읍지를 물색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의 산들이 새 도읍의 주산이 되고자 굴러왔다. 문헌상으로 대조해서 살펴보면, 얼추 고려시대 말쯤일 것으로 추정된다. 산 하나는 곧바로 무학대사를 따라 한양으로 갔다. 다른 산은 설악이 새 도읍지가 될 것으로 믿고 서성거렸다. 그로부터 300년가량 세월이 지나고 자잠나루 만곡부에 앉아서 조선 개국을 기다리고 있던 산에게 몹시 실망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무학대사를 따라 한양으로 향했던 산이 삼각산(三角山)이라는 이름을 얻고 조선국 새 도읍의 주산이 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 산은 울면서 백두산으로 돌아가려다가 그만 울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옥황상제는 ‘저 아래 한양부라는 마을이 장차 한양 못지않게 융성할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울업산(蔚業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로 신선들이 자주 찾아왔다. 신선들은 울업산 정상의 명당에 앉아서 바둑, 장기를 두고, 북한강을 바라보며 노래하곤 했는데, 그곳이 바로 신선봉(神仙峰)이 되었다.
북한강 청평호 반대편에는 호명산(虎鳴山)과 호명호수가 나란히 자리하고 앉아 있다. 호명산이라는 이름은 산 일대에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현대 산업화 시대에 조성된 호명호수는 전기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한 대한민국 최초의 양수발전소이다. 심야에 남아도는, 값싼 전기를 이용해서 북한강 하류의 강물을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린 다음 전기수요가 많아 전기료가 비쌀 때, 강물을 수직으로 떨어뜨려 전기를 얻는다.
호명호수는 마치 하늘과 호수가 맞닿은 듯한 모습이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고 하여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특히, 호수 주변에 조성된 1.7㎞의 둘레길은 자연을 벗 삼아 산책하기에 안성맞춤 환경을 자랑한다. 호수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호명호수 전경과 멀리 북한강, 청평마을을 조망하면서 차 한 잔을 즐기면서 힐링·명상을 즐길 수 있다. 호명호수를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에는 여행객들과 등산객들이 계절마다 찾아온다. 천혜의 산자 수려한 산세와 산 정상의 인공호수가 조화를 이루어 값진 인문적 관광 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체육대회 개막식 때 이곳에서 성화 채화식을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호명호수 일대는 오랫동안 이어온 인문지리적 문화자원과 호수 주변에 꾸며져 있는 꽃과 나무, 양수발전 시스템, 성화 채화식 등 다양한 관광자원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북한강변 자라섬 꽃페스타의 지속적인 성공 사례를 통하여 가평군이 추진하고 있는 관광 유인(Pull) 전략을 인문적 접근방식으로 심층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북한강의 대표적인 생태관광지이자 대규모 축제 수용 능력을 갖춘 자라섬을 중심으로 관광객을 집중적으로 유인하고, 주변 관광지와 관광 편의시설을 연계하여 체류형 관광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관광 마케팅 방식이 기존의 사회과학적 통계 접근방식과 함께 유용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정부의 관광전략 일환으로 추진하는 지역 관광지 간접 관광 유인 정책 방침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가평군의 江과 山 등 생태관광자원 기반 특성화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직접적 관광 유인(Pull)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면, 가평군 소상공인 중심 관광산업 활성화와 청년층을 위한 지식기반 일자리 창출 등 관광산업 성과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