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진 [다주리 한우곰탕 운영]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길재'의 시조를 읊조리며 도달한 나의 옛 고향인 경남 진해, 역시 야속할 만큼 변해 있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그저 옛 책 속에만 머무는 고사성어가 아님을, 눈앞에 펼쳐진 낯선 아파트 단지와 번화한 도로를 보며 실감한다.
어린 시절,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골목길을 누비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 고사리 같은 손을 맞잡으며 나는 이 우정이, 이 동네가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그 시절의 소년, 소녀들은 없다.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거센 물결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서글픔이 밀려왔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이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아니겠는가.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어, 붙잡으려 애쓴다고 머물지 않으며 멀어진다고 해서 슬퍼할 일도 아니다. 그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찬란하게 채워주었던 그들에게 마음 깊이 고마울 뿐이다.
발걸음을 옮겨 희미하게 흔적이 남아 있는 옛 골목길 모퉁이에 선다. 낡은 담벼락, 여전한 능선의 실루엣 아래로 환청처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겹쳐온다. 다마치기를 하고, 오징어 달구지 놀이를 하던 땀방울 맺힌 어린 시절의 내가 저만치서 뛰어놀고 있다.
나는 그 소년의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그리고 아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참 잘 자랐다"고, 눈빛으로 따스한 악수를 건네본다.
변해버린 풍경 속에서도 나를 키워낸 기억의 뿌리는 여전히 고향 땅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슴 깊은 곳에서 한 구절의 말씀이 묵직한 울림으로 떠올랐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
돌아보니 삶의 모든 순간에는 정해진 계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소리 높여 웃던 '만남과 성장의 때'가 있었고, 정든 곳을 떠나보내야 했던 '상실과 이별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지나간 추억들을 가만히 반추하며 삶의 깊이를 음미하는 '그리움과 성숙의 때'를 지나고 있다.
고향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지만, 내 마음속 고향은 이토록 단단하고 따뜻하게 살아 숨 쉰다.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오늘 나는 내게 허락된 '지금'이라는 때를 감사함으로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