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상용(가평군 전문위원. 경영학박사)
해마다 칠월 칠석날 전후로 북한강 유역 자라섬 일대에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곤 한다. 일 년에 단 한 번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면서 눈물을 흘려 비가 된다고 한다. 이 무렵이 되면 자라섬 주변의 까막까치들이 무리 지어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칠월 칠석날 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밤새도록 제 몸과 날개를 이어서 은하수 다리를 만드느라고 힘을 다 쓴 새들은 기력이 쇠하고 머리털이 빠져 대머리가 되고 만다. 이 재미있고도 애틋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가평 지역의 정겨운 구전설화로 꾸준히 각색되며 전해져 왔다.
칠월 칠석은 예로부터 길일로 여겨온 대표적인 세시 명절이다. 평안남도 덕흥리에 위치한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소를 끄는 견우와 이를 바라보는 직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이 풍습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고전소설, 가사(歌辭), 시조, 민요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등장하는 오작교 설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구전되며 다채로운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문학적으로는, 조선시대 국문시가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정철의 ‘속미인곡’을 빼놓을 수 없다. 옥황상제가 계시는 천상계를 배경으로 임과 이별한 서글픔과 절절한 그리움을 견우직녀의 처지에 빗대어 아름답게 꾸며냈다. 조선 후기의 칠석가나 칠석 민요에도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는 애절한 사연이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전승되었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이 남원 광한루 오작교에서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장면 역시 오랜 구전설화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칠월 칠석날 처녀들은 깨끗한 정화수를 떠놓고 직녀성에게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요즘으로 치면 중요한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거나, 각자 마음속에 품은 소원이 잘 풀리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소원 성취의 날’이었던 셈이다. 농촌에서는 밀 수확이 끝나는 시기와 맞물려 있어, 갓 빻은 신선한 밀가루로 국수를 말아 먹거나 애호박을 썰어 넣은 밀전병을 부쳐 먹으며 이웃과 정을 나누었다. 길고 지루했던 여름 장마에 눅눅해진 옷가지와 책들을 볕이 드는 마당에 널어 말리는 ‘쇄서포의(曬書曝衣)’ 풍경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 제사나 격식을 따지기보다는, 온 가족이 모여 눅눅한 여름의 습기를 털어내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도란도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던 소박한 명절이었다.
이토록 낭만적인 칠월 칠석이지만, 정작 북한강 유역에 자리한 자라섬 일대는 반가운 날이 아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집중호우로 인해 크고 작은 수해를 반복적으로 겪어왔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라섬이 속수무책으로 침수되는 안타까운 일이 매년 반복되어 주민들의 시름을 깊게 했다. 자라섬이 앞으로는 폭우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지역에 전해오는 정겨운 설화를 문화관광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만들어 보려 한다.
본래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외동딸인 직녀는 베를 짜고 옷을 만드는 임무를 수행하던 관직에 있었다. 그녀가 혼기를 맞이하자 옥황상제의 일급 참모들이 사방으로 훌륭한 사윗감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상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목동 견우가 신랑으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혼인의 기쁨도 잠시,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져 기본 업무인 소 치는 일과 베 짜는 임무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진노한 옥황상제는 그들을 은하수 양편으로 갈라놓고 일 년에 단 한 번 칠월 칠석날 만나게 했다. 가혹한 형벌을 애통해하며 흘리는 두 사람의 눈물이 지상에는 폭우로 이어졌고, 북한강 자라섬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쯤 되자 옥황상제의 일급 참모들은 견우와 직녀의 혼사를 잘못 이어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몸을 숨겼다. 참모들의 후속 조치가 미흡해지자 날이 갈수록 북한강 폭우 피해는 더욱 심해져 갔다.
북한강 유역 폭우로 자라섬에 물난리가 나고, 참모들은 복지부동으로 일관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 있었다. 바로 북한강 자라섬 부근에 살고 있는 하급 관료들인 까마귀와 까치들이었다. 그들은 재난상황실에 모여 난상 토론을 벌인 끝에 자라섬에 다리를 건설하기로 작정했다. 수천 마리의 까마귀와 까치들은 자신들의 몸을 서로 이어 붙이고 날개를 펼쳐서 은하수를 횡단하는 다리를 만들었다. 견우와 직녀는 까막까치들이 몸소 만든 다리 위에서 사랑을 불태웠다. 그제야 비로소 북한강 자라섬에 내리던 폭우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하지만, 은하수 다리를 만드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한 까막까치들의 머리털은 홀랑 빠져 대머리가 되고 말았다. 훗날 사람들은 이 은하수 다리를 까마귀 오(烏)와 까치 작(鵲) 자를 써서 ‘자라섬 오작교(烏鵲橋)’라 불렀다.
오랜 세월 자라섬을 맴돌며 구전으로 전해오던 오작교 설화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 속에서 새롭고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가평군이 수년 동안 추진해 온 ‘자라섬 수변생태관광벨트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자라섬 출렁다리’가 완공된 지 한 해가 지났다. 올해는 장마와 폭우 속에서도 자라섬은 큰 침수 피해 없이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자라섬 출렁다리가 까막까치들이 만든 전설의 자라섬 오작교 역할을 대신 해준 것이다. 새롭게 탄생한 이 출렁다리가 전설의 자라섬 오작교처럼 사람과 자연을 잇고, 아득한 전설과 생생한 현실을 이어주는 가평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확고히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요즘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북한강 자라섬 부근의 까막까치들이 무리 지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곤 한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 사랑을 나눌 새로운 오작교가 혹여 거센 폭우로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바라건대, 무엇보다도 북한강 자라섬 부근에 서식하는 우리의 친구 까막까치들이 해마다 칠월 칠석날이면 사랑의 오작교를 놓기 위해 머리털이 몽땅 빠지는 수고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아도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