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상용(가평군 전문위원. 경영학박사)
우주 대자연의 질서가 혼란스럽다. 계절 흐름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시대가 되었다. 혼란스러운 계절의 끝자락에 짝을 찾아 간절히 울어대는 수컷 매미 소리에 젖어 문득 환골탈태를 생각한다. 매미는 7년 이상 오랜 시간 땅속의 어둠을 인내하다가 세상에 나와 허물을 벗는다. 낡은 껍질을 벗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른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첫머리에 곤(鯤)이라는 커다란 물고기가 거대한 새 붕(鵬)으로 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그마치 등 길이만 수천 리에 이르고, 날개를 펼치면 하늘을 뒤덮은 구름 같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상공으로 솟아올라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광경이다.
그때 숲속에서 느릅나무 가지를 겨우 오르내리던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그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우리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저 큰 새는 무엇 때문에 저토록 높이 올라 남쪽 바다까지 가려는 걸까?” 장자는 이를 두고 “매미처럼 작은 미물은 봄과 가을을 모른다(蟪蛄不知春秋; 혜고부지춘추).”라고 평가했다.
대붕과 매미, 두 존재는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의 가치를 지닌다. 무릇, 세상은 대붕처럼 높은 곳으로 비상하며 초월적인 비전을 꿈꾸라고 다그치지만, 주어진 짧은 생을 작은 숲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매미의 삶이 더욱 가치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살아가면서 상상 속 거대한 대붕은 단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지만, 매미는 해마다 한여름 내내 부대끼며 살아온 친근한 이웃이다. 그렇기에 내게는 대붕의 웅장함보다 매미의 소박한 삶이 훨씬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매미는 비록 한 달 남짓한 짧은 생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자연과 약속을 묵묵히 지킨다. 생태계의 가장 낮은 곳에 머물면서도, 주어진 여름 한 달 동안 끊임없이 소리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뜨겁게 증명한다. 매미는 땅속에서 오랫동안 굼벵이로 지내면서도,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시간을 재촉하지 않는다. 자연이 정해준 우주의 시간에 따라 묵묵히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비로소 스스로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온다. 낡은 것을 깨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 그러함’을 뜻하는 노자의 무위자연 철학과 깊이 닮아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미는 해탈을 향한 인내를 상징한다. 깜깜한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즙을 먹으며 7년 이상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인간이 세상에 나아가 능력을 펼치기 전 스스로 실력을 갈고닦으며 인내하는 과정과 같다. 이렇듯 오랫동안 때를 기다리던 매미는 마침내 땅 위로 올라와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매미가 허물을 벗을 때는 겉모습은 그대로 둔 채 알맹이만 빠져나간다. 인간이 팍팍한 삶과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혁신의 과정과도 닮아있다. 구태의연한 껍데기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이러한 매미의 탈각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 만든 틀과 사회적 관습, 선입견, 그리고 탐욕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만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매미의 선량함은 선조들의 통치 철학과 정신세계에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조선시대 임금과 관료들은 매미 날개 형상을 본떠 만든 ‘익선관’이라는 관모를 쓰고 국정을 살폈다. 만 원짜리 지폐 속 세종대왕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그것이다. 권력자가 매미의 날개를 머리에 얹은 이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매미의 지혜와 덕을 늘 곁에 두고, 탐욕을 멀리하며 백성을 위해 검소하고 올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선조들은 매미에게 인간이 평생 배워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이 있다고 믿었다. 첫째는 문(文)으로, 머리 모양이 선비들이 쓰는 갓끈을 늘어뜨린 모습과 흡사하여, 학문과 지혜를 갖춘 존재로 보았다. 둘째는 청(淸)으로, 오직 맑은 이슬과 나무의 수액만 먹고 살아가기에, 세상 때 묻지 않는 청렴한 삶의 본보기였다. 셋째는 염(廉)으로, 사람이 피땀 흘려 가꾸어 놓은 채소나 곡식을 탐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으니, 염치와 정직의 상징이었다. 넷째는 검(儉)으로, 집을 짓지 않고, 자연 그대로 나무와 수풀 사이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의연하게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은 신(信)으로, 한여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존재를 증명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때를 알고 조용히 물러가는 신의를 지킨다.
북한강변 깊은 산속, 바람벽에 걸린 달력이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다. 지난 한 달 남짓 세월 짝을 찾아 울어대던 매미는 그 찬란했던 한여름 무대에서 홀연 사라지고 있다. 짧지만 아름답고 풍성했던 한여름 축제는 귀뚜라미와 여치들에게 넘겨주게 된다. 아무렴, 매미인들 그들과 어울려 이 풍요로운 가을을 더 만끽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매미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인간에게 큰 깨달음을 남긴다.
삼라만상 온 우주 만물은 오로지 ‘시간’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만 존재하며, 시간은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의 성패가 갈린다. 무릇 미천한 풀벌레 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조차 스스로 때를 알고 계절을 알며, 나아갈 줄도 알고 멈출 줄도 안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나는 도대체 무슨 미련이 남아 있기에, 아직도 어정쩡하니 세상 권력과 재물의 기득권 주변을 정처 없이 맴돌고 있는 것일까?
무더위가 온통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을 되돌아보니, 북한강변 숲속 우거에서 듣던 뜨거운 매미의 노랫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미가 온 영혼을 다해 부르는 생명의 노래이자, 탐욕 가득한 인간들에게 던지는 가르침이었던 게다.
그리하여 이제 지나온 오랜 시간을 수놓았던 달콤한 추억과 지금 온통 벌여놓은 단말마적 뜨거운 풍경과 다가올 미래 수확의 기다림을 모두 얼싸안은 채 조용히 현실로 돌아온다. 자그마치 7년이라는 모진 세월 이상을 혹독한 땅속 어둠의 틀에서 묵묵히 생명을 준비하고, 때가 되면 고단한 껍질을 벗고 환골탈태하여 세상에 나와 열정을 다해 노래하며, 떠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퇴장하는 매미의 단호한 행동 앞에 두 손 모아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인생을 통틀어 실패와 낙심으로 얼룩졌던, 쓸데없는 사유적(思惟的) 일기 한 토막을 이만 슬그머니 접어 갈무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