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양태룡(중랑구청 인문학 전문강사)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본래 뼈와 뿔, 옥과 돌과 같은 재료를 다듬는 장인의 세밀한 작업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물건을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을 넘어, 주희(朱熹)의 『대학(大學)』 주석과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와 제자들의 대화를 거치면서 사람이 자신의 학문과 품성을 갈고닦아 인격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태도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절차탁마’에서 말하는 절(切)·차(磋)·탁(琢)·마(磨)는 왜 네 글자로 나누어 표현했을까요? 이는 단순히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한 것이 아닙니다. 다듬고자 하는 재료와 작업 방법, 그리고 그 과정의 단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를 살펴보면 절차탁마는 단순히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이 아니라, 거친 것을 덜어내고 부족한 것을 보완하면서 점점 더 정교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절차탁마’는 대상 재료와 작업 방법에 따라 절·차(切·磋)와 탁·마(琢·磨)로 구분됩니다.
뼈와 뿔[骨角]은 자르고 끊어내는 절(切)의 과정을 거친 뒤, 줄과 같은 도구로 거친 부분을 다듬는 차(磋)의 과정을 거칩니다. 반면 옥과 돌[玉石]은 끌과 망치 등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내는 탁(琢)의 과정을 거친 뒤, 숫돌이나 연마재로 표면을 갈아 매끄럽게 만드는 마(磨)의 과정을 거칩니다.즉, 뼈와 뿔은 ‘절이차(切而磋, 잘라낸 뒤 다듬음)’하고, 옥과 돌은 ‘탁이마(琢而磨, 쪼아낸 뒤 갈아 다듬음)’하는 것입니다. 같은 ‘다듬음’이라 하더라도 재료의 성질에 따라 방법과 도구가 달랐던 것입니다.
둘째, 주희는 『대학』의 주석에서 이러한 과정을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골각에는 절차(切磋)의 도구를 사용하고 금석에는 탁마(琢磨)의 도구를 사용한다고 설명하면서, “절차탁마는 모두 물건을 다스리는 일이다(切磋琢磨,皆治器之事也)”라고 말합니다.이어서 절차(切磋)는 ‘재물사성형질(裁物使成形質)’, 즉 물건을 다듬어 일정한 형체와 바탕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탁마(琢磨)는 ‘치물사기활택(治物使其滑澤)’, 즉 이미 형태를 갖춘 물건을 더욱 다스려 매끄럽고 윤택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차탁마가 한 번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먼저 재료를 다듬어 형체를 만들고, 그다음 다시 세밀하게 갈고닦아 완성도를 높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인간의 공부에 비유한다면, 먼저 자신에게 불필요한 허물과 거친 면을 덜어내고, 그다음 남아 있는 부족함을 끊임없이 다듬어 가는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쉽게 ‘덜어내는 공부’와 ‘다듬고 가꾸는 공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절(切)과 탁(琢)을 통해 거친 부분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어 자신의 바탕을 바로 세우고, 차(磋)와 마(磨)를 통해 그 바탕을 더욱 세밀하게 갈고닦아 인격의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셋째, 이러한 절차탁마의 원리가 인간의 현실적인 성찰과 수양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자공(子貢)의 대화입니다.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
자공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아첨과 교만이라는 허물을 제거한 상태를 제시합니다. 공자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를 제시합니다.“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可也,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
여기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에서 ‘무엇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은 허물을 덜어낸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수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한 가운데서도 예를 좋아하는 적극적인 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공은 이 말을 듣고 『시경』의 구절을 떠올립니다.
“『시경』에서 ‘절차한 듯하고, 탁마한 듯하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군요.”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
자공은 여기서 수양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사람의 인격도 처음에는 거친 재료와 같아서 먼저 허물을 덜어내야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세밀하게 다듬고 갈아내면서 더욱 높은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 자하(子夏)는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을 통해 한 단계 더 깊은 통찰을 보여줍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갖춘 뒤에 한다.”
繪事後素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흰 바탕[素]이 마련되어야 하듯, 사람의 수양에서도 먼저 자신의 바탕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욕심과 허물을 덜어내고 마음의 바탕(德)을 바르게 한 다음, 禮로써 인격이라는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자하를 칭찬하며 말합니다.
“나를 깨우쳐 주는 자는 상(商)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起予者商也,始可與言詩已矣
절차탁마의 의미가 여기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수양은 단순히 잘못을 없애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덜어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좋은 것을 기르고, 이미 갖춘 것도 다시 갈고닦아 더욱 빛나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절차탁마는 한 번의 단련으로 끝나는 공부가 아닙니다. ‘절’과 ‘탁’으로 거친 부분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어 바탕을 세우고, ‘차’와 ‘마’로 그 바탕을 세밀하게 갈고닦아 인격의 빛을 드러내는 지속적인 자기수양의 과정입니다.
절차탁마란 나를 무작정 채우는 공부가 아닙니다. 먼저 불필요한 허물과 욕심을 덜어내어 곧은 바탕을 세우고, 그 위에 필요한 덕목을 정성껏 다듬어 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빛내어 가는 평생의 수양입니다.
덜어내야 바탕이 드러나고, 다듬어야 품격이 생깁니다.
결국 인생이란 자신을 절차탁마하며 완성해 가는 존재입니다.